壬寅秊(2022년) 元旦, 동해로 해돗이 맞이하러 갔습니다.
양평역에서 고속철도 KTE 산천호를 타고 강릉역에 내려 경포로 직행했습니다.
붉은 태양이 힘차게 솟는 광경을 보고 소원을 빌었습니다. 나와 가족을 위해 그리고 문중과 정절공종회를 위해~
정절공 옥(沃) 할아버지께서 1372년 강릉 바닷가에서 왜구를 무찌르셨던 그 모습을 연상하며
강릉항(연목항)에서 부터 남대천 하류로 가서 죽도봉을 거쳐 남태천을 거슬러 걸었습니다.
강릉도호부까지 약 5KM를 걸으며 옥 할아버지를 생각했습니다.(28세 호경과 함께)
도호부에서 잠시 머물다 강릉 중앙시장에 들러 다시 강릉역으로 되돌아 욌습니다.
동해여!
동해 바다여!
그대는 아는가?
육백오십여 년 전, 그날의 참혹(慘酷)한 그 장면을
푸르딩딩한 악당(惡黨)들이 강릉 앞바다에 새까맣게 몰려와
이 땅의 여린 백성들을 무참히 짓밞던 그 슬픈 역사를…
젊은 병사들은 다리 힘이 좋아 대궁산(大弓山)으로 피했지만
늙은 백성과 아녀자들은 악당들의 창칼에 속수무책이었다.
그때 연좌(連坐)에 엮인 관노 하나가 활을 꺼내 들었는데
왕도 인정하는 고려 으뜸의 강궁(强弓)이라 명궁(名弓)으로 불렸다.
안렴사와 부사는 수기(手旗)와 병졸을 명궁에게 맡겼다.
명궁은 괘방산에 올라 강릉 앞바다에 몰려온 악당들의 진세를 보고
죽도봉과 월대산에 봉수대(烽燧臺)를 설치하고
남대천으로 적을 유인했다.
곳곳에 활을 꽂아두고 패하는 척 물러나며 적을 향해 백발백중
아침부터 저녁까지 활을 쏘아 적들을 섬멸하니
드디어 악당들은 백(魄)은 남겨두고 혼(魂)만 도망가 제 땅으로 돌아갔다.
이름하여 ‘이옥의 강릉대첩’이라~
명궁은 그 후 강릉도절제사로 강릉을 지켰고, 오늘도 지키고 있다.